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

민주주의 또 다른 이름, 어머니

 

아들이 세상을 떠난 그 순간, 어머니의 삶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절망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읽은 슬픔과 눈물이 세상을 향해 울부짖게 했던 그 순간, 시대의 아픔을 껴 안았습니다. 세상을 향한 단단한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침묵 대신 걸음을 택했습니다. 그 맨발 같은 용기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길이 되었습니다. 멈출 수 없는 발검음이 되었습니다. 결국엔 아들의 빈자리를 시대의 빛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오순의 하루는 슬픔으로 시작하고, 과정은 늘 저항이었지만, 그 끝은 희망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이름은 민주주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하루하루가 내일이 되어 대한민국 역사를 움직였습니다.

 

XL-1 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
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 민주화 운동가 이오순 평전
임수정 저 | 밥북 | 2025년 11월 01일

 

이 책 아니 이오순 어머니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민주화운동이 갖는 의미와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개인의 비극을 넘어섭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현실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민주열사 가족의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여! 광주 2천여 열사여! 김종태 열사여! 김의기 열사여! 송광영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스물 여섯 명의 열사 이름을 아무런 순서 없이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대로 외쳐 불렀다. 땅과 하늘에 대고 외치는 절규였다. 그리고 끝단 한마디의 군더더기도 없이, 문익환의 외침은 고요히 퍼져나갔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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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에는 민주화를 희망하는 학생, 노동자, 시민이 변화를 이끈 중요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1960년 4·19 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 입니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목소리를 억누르던 시간이었고, 많은 이들의 삶이 이유 없는 탄압 앞에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시대에, 가장 약한 자리에 서 있었던 ‘어머니’가 누구보다 강한 저항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수많은 민주열사의 죽음이 깨달음이 된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국가 폭력에 맞서 인권과 자유의 가치 확립을 위한 행동이 되었습니다. 그 행동은 세상을 흔들고 진실을 드러내게 하였습니다.

이오순과 여러 유족들이 설득한 끝에 이소선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만드는 데 앞장서기로 했다. 유가협은 1986년 8월 12일 창립을 선언했다. 전태일, 김종태, 이재호, 홍기일, 박종만, 김의기, 송광영, 김세진, 박영진, 이경환, 신호수 열사의 가족들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도움으로 ‘평화의집’에서 창립대회를 열었다.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숭고한 뜻을 널리 퍼트리기 위함이었다. 유가족의 뜻과 의지는 창립선언문에서도 밝히고 있다.222쪽

이 책이 기록하는 내용 중에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이오순과 여러 유족들이 이소선(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을 설득해 새로운 단체를 만들도록 앞장세운 순간입니다. 그들은 아들의 죽음을 ‘유명무실한 추도’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죽음이 멈춘 자리를 활동으로 이어붙이기 위해, 그리고 희생된 이들의 뜻을 시대에 남기기 위해 유가협을 세운 것입니다. 창립선언문에는 그들의 절박함, 분노, 그리고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그 선언은 유족들의 울음이 처음으로 ‘공적인 저항’으로 변한 순간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잇고 명예를 회복하고, 진상 규명과 추모 사업을 벌리는 등 연대 투쟁 사업을 전개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친구는 평전을 생애사로 이해한 것 같았다. 생애사는 개인의 삶을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사회구조를 파악하는 학술적인 작업이다. 반면에 평전은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과 평가를 바탕으로 개인의 삶의 궤적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적·역사적 맥락은 생애사와 평전 모두의 공통분모이다. 이오순의 평전은 민주화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생애사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작업이다.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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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오순이라는 한 어머니의 삶을 단지 ‘슬픈 이야기’로 그리지 않습니다. 책은 그 시대의 가난했던 대한민국 한 여성이 시대를 견인하는 ‘주체’로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들여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고통을 피하지 않았고, 그 고통을 정치적 현실과 맞닿게 된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 어느 순간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서사 한가운데 서게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민가협과 유가협, 혹은 그와 유사한 민주화 운동 단체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비슷한 이미지, 혹은 겹쳐져 있는 활동 때문이리라. 찾아보니 민가협은 1985년 12월 12일에 설립되었고, 주로 구속학생과 양심수 등 생존 피해자를 위해 싸웠다. 이와 달리 유가협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의 남은 가족들로 이뤄진 단체다. 민가협에서 따로 빠져나와 1986년에 결성됐다. 이오순 열사는 유가협이 만들어질 때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고 들었다. 그 감정을 짐작해 보면 자녀가 아직 살아서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가족을 볼 때 부러웠을 것 같다. 그리고 죽은 자식을 대신해 싸워야 한다는 책임감은 그들과 달랐을 것 같다. 그 시절의 투쟁을 이력 삼아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활약하는 정치인, 유력인사들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 마음처럼 말이다.301쪽

저자 임수정은 가족과 동지, 지인에 대한 인터뷰와 민주화 운동 관련 자료를 근거로, 그녀가 어떻게 점차 운동의 한가운데 섰는지를 면밀히 복원하고 있습니다.

1989년 12월 17일은 유가협이 만남의집에 입주한 역사적인 날이다. 만남의집 이름은 ‘한울삶’이다. 서화전에 신영복이 후원한 글씨가 ‘한울삶’이었다. ‘한울타리’, ‘하늘 같은 삶’, ‘한가족처럼 사는 삶’이라는 뜻이다. 집의 의미는 이오순이 생각한 것과 똑같았다. 이오순은 한울삶에서 운명하기 직전까지 약 4년 정도 유가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냈다.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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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누리는 듯하지만, 그 당연함은 결코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숨 쉬듯 사용하는 자유, 마음껏 말하고 모일 수 있는 권리는 모두 누군가의 삶과 죽음, 피와 눈물 위에서 어렵게 되찾은 것이다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열사들이 남긴 마지막 외침이 역사의 방향을 틀었고, 그들의 희생이 하나둘씩 모여 지금의 민주주의를 밀어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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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이오순이라는 이름은 ‘평범한 어머니가 어떻게 비범한 역사를 만들어냈는가’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사례 같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세상을 향한 질문으로 바꾸었고, 자신의 슬픔을 공동체의 의무로 확장시켰습니다. “아들의 빈자리를 정의로 채우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단지 개인의 고통을 넘어 대한민국이 다시 민주주의로 나아가도록 만든 하나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어떤 눈물 위에서 자라났는지를 다시 보게 됩니다.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그럴 것이다라고 추정만 했던 것이 명확해 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의 주인공이었던 한 어머니의 이름—이오순—뿐 아니라, 그와 함께 시대를 밀어 올렸던 모든 열사들의 삶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그들의 유산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다음 세대의 약속인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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